참여

청량산

2006.06.20 10:47

이한방 조회 수:2345 추천:115

봉화 청량산(870m) 육육봉,8대3굴을 가진 바위 명산

'다행히도' 아직껏 청량산을 가보지 않았다면, '이제 볼 만한 산은 거진 다 보았다' 고 여겨졌을 때 가시길 바란다. 청량산을 보고 나면 그대 눈은 한껏 사치스러워질 것이기 때문이다. 이 청량산의 승경을 맛본 다음에는 이 땅의 어지간한 산악 풍경으로는 성에 차기가 어려울 것이기 때문이다.

청량산은 옛 기록에서 이르되 6.6봉, 8대(臺), 3굴을 가진 바위 산이다. 이 산의 중심에 앉은 청량사에서 두루 바라뵈는 9개 봉우리와 그 바깥쪽 3개 봉우리 합해 12봉을 사람들은 청량산 6.6봉이라 불러왔는데, 이는

'청량산 육육봉을 아는 이 나와 백구(白鷗)/
백구야 날 속이랴 못믿을 손 도화(桃花)로다/
도화야 물 따라 가지 마라 어주자(漁舟子) 알까 하노라' 는 퇴계 이황의 시에서 유래한 말일 것이다.

십이봉이라 하지 않고 육육봉이라 한 것에 대해 학자들은 "과거엔 시란 곧 노래로서, 어감이 좋아서 취한 말일 것" 이라 추측한다. 퇴계의 저 유명한 국문 시가인 도산십이곡도 실은 전 6곡, 후 6곡으로 나뉘어져 있다. 아무튼 이 육육봉 꼭대기에 올라 산의 바깥을 바라보든, 아니면 안쪽을 들여다보든 청량산은 두루 경치가 뛰어나다.

이런 산은 그리 흔치 않다. 시지어는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산중에도 둘 중 한 가지는 별반 신통치 못한 것이 있으니, 청량산처럼 안팎으로 절경인 산은 정말 희귀한 존재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산지사방으로 포장도로가 난 지금에도 어딘가 오지스런 분위기가 풀풀 풍기는 곳인 봉화 땅에서도 남동쪽, 백두대간에서 낙동정맥이 갈라져 나간 지점 아래의 우묵하고 깊은 곳에 숨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미 천 년 세월 전인 신라 때부터 사람들이 찾아 갔던 것은 그만큼 이 산의 경개가 뛰어났기 때문일 것이다. 신라 명필 김생을 비롯해 최치원, 이황, 주세붕 등 역사에 이름이 전하는 많은 인물들이 이 산을 탐했다.

기암봉들이 모여서 미로와 같은 산릉과 계곡을 이룬 한편 입구만 틀어막으면 안심이었을 이 청량산은 피신처로도 적격이었다. 이 청량산으로 고려 공민왕이 홍건적의 난을 피해 들어온 적이 있다. 공민왕은 청량사 법당 유리보전의 현판 글씨를 자신이 청량산을 찾았던 명확한 흔적으로 남겼다.

물론 그 누구보다 이 산을 먼저 찾아들었던 이는 스님네들이다. 신라 문무왕 3년(663년) 원효대사가 연대사란 이름의 절을 지금의 청량사 자리에 세웠고, 그후 무려 27개나 되는 사암이 이 청량산 안에 들어 앉았다고 한다.

청량산과의 첫 대면에서는 차마 그 말을 믿기 어렵다. 청량사와 응진전 두 사암이 자리잡은 것만도 용하다 싶을 정도로, 사방에 보이는 것은 몽땅 암봉이며 하나같이 수직으로 깎아질렀다. 거기에 절이 앉기는커녕 사람이 걸어 오를 틈새나마 있을까 의심스러워지는 것이다. 그러나 그 층암절벽들 사이로는 교묘하게 길이 나 있으며, 여기저기에 커다란 법당까지는 아니더라도 일념으로 구도열을 사를 암자 정도는 너끈히 앉힐 만한 공간이 널려 있다.

이러한 암자터 였음직한 자리들과 6.6봉 정상, 그리고 그 봉우리들 중턱의 8대는 곧 뛰어난 조망처가 된다. 좋은 조망점이란, 조금 과장하면 '좋은 경치'의 거의 모두다. 풍경의 좋고 나쁨을 가장 크게 좌우하는 것이 조망점이다. 육육봉과 8대와 많은 암자터를 가진 청량산은 그러므로 옛적부터 명산으로 사랑받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 산은 얼마나 작은가. 해발 870m에, 넉넉하게 넓혀서 자리잡은 도립공원 면적이 고작 48.76㎢로서 북한산 국립공원 절반 정도이며, 암봉군이 밀집한 지역만 따지면 단 5~6㎢로 줄어든다. 한 손 안에 들것 같은 그 좁은 공간 안에 무수한 암봉들이 몸을 비비대며 들어앉으며 이 일대의 경관은 특히 밀도가 높은 것이 된다. 이런 청량산에서 몇 시간 만에 어디로 어떻게 주파했다느니 하는 자랑은 자랑이 아니라 부끄러운 치기의 드러냄일 뿐이다.

퇴계 이황과 같은 진성 이씨 집안 사람인 이창경씨(예천교육청 관리과장)는 이세창씨와 함께 주세붕의 1544년 저술인 <유청량산록>과 이세택의 <청량지>(1771년), 그리고 이만여가 편집한 <오가산지>(1901년)를 바탕으로 한 소책 <청량산고증>을 펴냈다. 이 책에 따르면 청량산의 원래 이름은 수산(水山)이었으나 청량사 주위가 특히 절승이므로 산을 청량산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영천지(榮川誌)>에는 낙타 타 자를 써서 타자산(駝子山)이라 기록되었다고 하니, 이는 곧 청량산봉들이 낙타의 혹과 흡사한 데서 유래했을 것이다.

청량사까지의 오름길 입석~응진전~산꾼의 집~청량사

입석~응진전 청량산 탐승로는 청량사를 중심점으로 하여 사방을 둘러싼 암봉 능선을 향해 방사상으로 뻗어 있다. 능선과 골짜기마다 사람이 다니지 않는 곳이 없지만, 안전이나 자연보호를 위해 폐쇄한 구간을 제외한 정규 등산로만 따진다면 암봉들을 주욱 꿰는 종주길, 그리고 이 종주길로 이어지는 청량사~보살봉, 청량사~뒤실고개, 청량사~자란봉, 두들마~의상봉 길이 청량산행길의 모두라고 할 수 있다.

이 산길들을 나름대로 엮어서 오르내리는 데는 이틀이면 넉넉하겠거니와, 하루 산행길로 꼽아본다면 역시 암봉 종주 길이 가장 권 할만 하지 않을까 싶다. 청량골 남쪽에 청량산 육육봉 중의 하나인 축융봉(845.2m)이 있지만, 이 산봉으로는 등산하는 사람이 거의 없다.

우선 청량사까지의 오름길은 두 가닥이다. 청량골로 난 도로변의 작은 저수지(육각정)에서 시작되는 급경사 찻길, 그리고 입석에서 오르는 오솔길이 있다. 빠르고 편하기는 계곡 찻길이겠지만, 응진전쪽의 절경을 놓치고 만다. 그러므로 입석~응진전~치원대~오산당(산꾼의 집)~청량사 길로 오른 뒤 하산할 때 찻길 이용을 권한다.

청량산 들목은 명호면 광석리 광석교다. 이 다리 건너 매표소를 지나 말끔한 포장도로가 이어지다가 갑자기 좁은 비포장으로 변하는 지점에서 300m쯤 더 오르면 작은 저수지와 초가를 한 육각정자가 있고, 그 맞은편으로 급경사 콘크리트 포장도로가 시작된다. 이 길이 청량사까지 난 찻길로서, 워낙 급경사인 데다가 좁아서 사찰 차량 이외는 통행을 금하고 있다. 저수지 근처는 도로가 다소 넓어서 승용차 몇 대쯤은 댈 수 있다.

저수지에서 800m쯤 청량골 비포장도로를 따라 더 올라가면 도로 오른쪽에 담양의 도담삼봉 축소판 같은 높이 2m쯤의 검은 바위봉인 '입석' 이 있다. 이 입석 맞은편(북쪽)으로 청량사 가는 오솔길이 나 있다. 바로 옆에 등산로 안내판도 서 있다. 입석 바로 아래 도로변에 작은 주차장이 있으므로 여기에 차를 대고 산행을 시작한다.

오솔길로 접어들어 천천히 8분여 걸으면 오른쪽 직각방향으로 샛길이 나온다. 응진전으로 가는 길이다. 직진하여 가면 발걸음이 편하고, 이후 20여 분만에 오산당(산꾼의 집)에 이어 청량사에 이를 수 있지만, 응진전 일대 풍치가 기막히므로 오른쪽 길로 접어들도록 한다.

가파른 길은 오래지 않아 끝나고, 왼쪽으로 산 중턱을 길게 가로질러 나아간다. 능선을 하나 감돌아들면, 곧 저 앞으로 기암봉이 나선다. 꼭대기가 둥그스름한 고구마 같은 기암이 몇 개 옹기종기 살을 맞대고 서서 하나의 커다란 암봉을 이루며 섰는데, 아침 햇살을 받아 뚜렷이 입체감이 드러난 그 기암봉 기운에 필경은 너도나도 감탄 연발이다. 기암봉 바로 아래의 작은 암자가 응진전이며, 그 기암봉을 포함한 봉우리 전체가 금탑봉이다.

응진전에는 고려 공민왕의 부인 노국대장공주가 국가 안녕을 기원하며 16나한상을 모시고 기도했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가까이 다가가 보면 응진전 뒤의 암벽은 수직을 넘어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 천정을 이루었다. 때문인가. 이 응진전에서 기가 약한 사람이 잤다가는 밤새 가위에 눌린다고 한다.

응진전 앞 널찍한 암반에서 남쪽 축융봉으로 무심히 고개를 돌렸던 여인네들 중에는 "아이구머니나!" 하고 질겁을 하며 고개를 돌리는 이가 종종 있다. 영락없이 남녀가 관계하는 형상으로 보이기 때문인데, 사람에 따라서는 전혀 모르겠다면서 고개를 갸웃거리기도 한다. 아무튼 이 축융봉 산형이 수도자의 마음을 흐트러뜨린다고 하여, 과거 응진전 요사채의 축융봉쪽으로는 출입문이나 창문을 내지 않았다고 한다.

응진전~산꾼의 집~청량사

응진전 앞을 지나면 내청량 울안으로 드는 셈이다. 금탑봉~경일봉~보살봉~자란봉~연화봉으로 이어진 능선의 안쪽,둥근 함지박 형상의 골짜기를 내청량, 그 능선의 바깥쪽을 외청량이라고 부른다. 때문에 응진전을 한때는 외청량사라 부르기도 했다.

응진전 옆의 금탑봉 능선 허리를 지나 내청량 안으로 들어가노라면 우선 오른쪽으로 '어풍대'라 씌인 팻말이 보인다. 주탐방로를 벗어나 희미하고 가파른 길을 더듬어야 되므로 이곳은 그냥 지나치자. 조금 더 가면 갑자기 앞이 툭 트이며 내청량 일대가 한눈에 조망되는 기막힌 조망처가 나타난다.

이곳은 신라 고운 최치원이 머물던 곳이라 하여 치원대, 혹은 고운대라 부른다. 발 아래는 툭 깎아질렀고, 내청량의 공간 가운데로 길게 고개를 빼고 바라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드는 조망처다. 청량사를 중심으로 하여 왼쪽의 거대한 암봉은 연화봉이며, 연화봉 정상 왼쪽 바로 옆에 비죽이 귀처럼 솟아오른 암봉은 향로봉, 오른쪽 3시 방향의 뭉툭한 암봉이 내청량의 주봉인 보살봉이다. 청량산 최고인 의상봉은 연화봉 뒤의 능선에 가려 보이지 않는다.

치원대 근처, 총명수 옆에 치원암이란 암자도 있었다고 전하니, 고운과 청량산의 인연도 사뭇 깊다고 하겠으나, 고운의 청량산에서의 행적이 명확한 기록으로 남은 것은 없다. 하긴, 고운의 일화는 늘 전설이나 뜬 구름 같지 않았던가. 주세붕은 <유청량산록>에서 '고운이 명승을 편유하지 않는 곳이 없으니 동남명산에 이 산의 최고인데 어찌 와보지 않았겠는가' 고 술회하고 있다.

청량산 경개에 반했던 이가 고운 이외에도 어디 한 둘일까. 그 중에 주세붕은 <유청량산록>이란 기행문을 남겼다. 조선 중기의 문신이자 학자인 그는 금강산이며 지리산 등 명산을 두루 찾아 올랐던 '옛 등산꾼' 으로서, 중종 39년(1544년) 4월19일 여러 사람과 더불어 며칠간 청량산 탐승길에 올랐다.

청량산 탐승 후 그는 '우리 동국의 명산을 물음이 있은 즉 반드시 오악을 일컬을 것이니, 북은 묘향산, 서는 구월산, 동은 금강산, 중앙은 삼각산인데, 그 가장 크면서 남쪽에 있는 것은 두류산(지리산을 말함)이라고 이르나, 그 소산(小山)의 선경을 물은 즉 반드시 청량산이라고 이를 것이라'. 또한 '중국에 있었다면 천하에 이름을 떨쳤을 것' 이라고 기술했으니, 이 산에 어지간히도 반했던 것 같다.

<청량산고증>의 역주자 이창경씨의 추정에 따르면, 주세붕은 영주를 출발, 지금의 도산면 온혜리 용수사에서 1박 후 예안면 신남리를 거쳐 섬밭재, 물티재를 넘어 청량골로 접어들었다. 옛적의 청량산 드는 길목은 지금과는 정반대쪽이었던 셈이다.

그는 여러 사암에서 숙식하며 청량산 곳곳을 탐승했는데, 최고봉인 의상봉 주변만을 빼고는 거의 모두를 답파했다. 피리 부는 사람을 앞세우고 음주가무도 즐겨가며, 간혹은 '손으로 넝쿨을 부여잡고 이끼 낀 언덕을 기어서' 돌아보았다. 그는 이 <유청량산록>을 적잖이 아꼈던 듯, 퇴계 이황에게 일부러 가져가 보였고, 이에 이황은 발문을 썼다.

이황은 발문에서 그 자신 청량산과 보통 인연이 아님을 밝히고 있다. '선대의 집이 예안현에서 청량산 가는 길 도중에 있었고, 새벽에 출발하여 등산을 하면 해가 오시(午詩)가 못되어 산의 중복에 달할 수 있으니 실로 우리 집 산이 된다' 고 했다. 또한 젊은 시절에 부형(父兄)들을 따라서 서책을 지고 왕래하면서 이 산에서 독서한 것이 몇 해나 되는지를 알 지 못한다' 고도 했으니, 비록 <유청량산록>과 같은 긴 글을 남기지는 않았을 망정 청량산에 지식이나 애정은 단 며칠 다녀갔을 뿐인 주세붕에 비해 한결 깊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태어나자마자 부친을 여읜 이황은 13세 때, 당시 안동부사였던 숙부를 따라 청량산에 들어갔다. 그 때 그가 머물던 곳이 오산당. 혹은 청량정사로서, 그의 숙부가 지은 것이다. 여기서 수학했던 그는 나중에 이곳에 들어와 후학을 가르치기도 했으며, 도산십이곡도 여기 오산당에서 지었던 것으로 전한다.

치원대에서 탐승로를 따라 5분쯤 더 들어가면 삼거리가 나온다. 여기서 오른쪽 윗길은 암봉 종주길인 경일봉 가는 길, 왼쪽 아래로 갈짓자의 가파른 길로 내려가면 오산당이다. 오산당(吾山堂)이란 우리 집 산이란 뜻으로서, 실제로 이 오산당뿐 아니라 청량산 전체가 이씨 문중 소유로 돼 있다고 한다.

단청을 하지 않아 한결 맛이 고풍스런 오산당 옆에는 영양 산악계의 대부역을 해왔던 이대실씨가 산꾼의 집을 꾸며 살고 있다. 청량산은 손바닥처럼 훤한 사람이니, 길을 잘 모르면 이 산꾼의 집부터 들를 일이다. 오산당에서 조금만 더 가면 청량사이니, 절 구경마저 하고 산행길에 나서도 좋을 것이다.

산꾼의 집 앞, '약차 한 잔 거저 들고 가시라'는 팻말에는 아무 선입견을 가질 필요가 없다. 팻말 그대로 약차 한 잔 마시고, 제 손으로 씻어두고 되돌아나오면 된다.

암릉종주길

경일봉~보살봉~의상봉

산꾼의 집~경일봉~보살봉

응진전~산꾼의 집 사이의 삼거리에서 북쪽 윗길로 가노라면 다시 삼거리가 나오는데, 왼쪽은 김생굴, 오른쪽이 경일봉 가는 길이다. 길목에서 김생굴까지는 아주 가까우므로 김생굴 구경부터 하도록 한다.

김생굴은 신라의 명필 김생이 수학했던 곳으로 전한다. 다가가노라면 우선 반원형의 큰 굴이 있고, 그 위에 작은 굴이 또 하나 있는데, 위쪽에 야트막한 돌담을 쌓아둔 곳이 김생의 수도처로 전한다. 이 좁고도 궁벽한 곳에서 무려 10년간을 서도에 정진했다는 김생은 왕희지에 필적할 만한 천하명필이자 헤동서성(海東書聖)으로 중국에까지 널리 알려졌다.

주세붕은 <유청량산록>에서 '우리집에 김생의 글씨첩이 있는데, 그 자획이 다 가파르고 굳세어 바라보면 여러 바위가 다투어 비죽비죽 빼어난 것 같더니, 이 산을 보니 김생이 여기서 글씨공부를 하였음을 알겠다. 필의 정묘함이 입신의 경지에 들었다'고 감탄했다.

김생굴을 보고 삼거리로 되돌아와 급경사 길을 오르면 금탑봉 북쪽 안부다. 여기서 남쪽 금탑봉 정산 방향 길, 안부를 꼴깍 넘어 응진전으로 가는 길도 폐쇄 팻말이 붙어 있다. 그러니 왼쪽의 경일봉쪽 능선길뿐인 셈이다.

능선길임에도 불구하고 산 자체가 위낙 가파르다보니 숨이 턱에 닿는 가파른 길의 연속이다. 중간의 일부 구간에는 굵은 밧줄을 가설해두었다. 이곳뿐이 아니다. 청량산 등산로의 아느 구간이든 철계단이나 밧줄이 설치되지 않은 곳이 없다. 발 아래가 가마득한 벼랑인 곳도 연이어지므로 한시라도 방심한 상태로 걸어서는 안될 산이다.

안부를 떠난 지 20분 뒤면 아름드리 소나무가 그늘을 드리운 바위지대가 나온다. 바로 아래는 절벽이라 조망도 좋고 늘 바람이 불어오는 곳이라, 청량산을 늘 드나드는 안동, 영양 산꾼들은 반드시 여기서 걸음을 멈추고 쉬며 거풍도 한 뒤 산행을 잇는다.

이곳 거풍터에서 조금만 더 가면 '경일봉 750m' 라 새겨진 표지석이 선 곳에 다다른다. 이곳의 높이는 750m가 아니라 780m쯤 되니 고쳐야 할 것이다. 경일봉 표지석이 선 곳을 출발, 초록 쇠사다리를 지나 밋밋한 봉 정상을 지나 서쪽으로 방향을 틀어 내려가면 841m봉 전의 안부다. 이후 841m봉 정상으로 가는 도중 왼쪽으로 좋은 조망터가 있다.

841m봉 정상에서 5분쯤 간 지점의 안부에는 기역자 모양의 안내팻말이 왼쪽 옆으로 돌아가는 길을 가리키고 있다. 곧장 직진하여 가파른 암릉을 밧줄을 잡으며 지나도 되지만, 다소 위험하므로 제 길을 찾아가도록 한다.

보살봉 바로 아래에서 정상까지 약 30m 구간에는 스테인리스 난간을 한 쇠사다리가 걸쳐져 있다. 정상 옆에 널찍한 암반이 펼쳐져 있고 작으나마 소나무 그늘도 있다. 그러나 남쪽 조망이 정상 암봉에 가려져 있는 것이 흠이다. 여기서 동쪽 저편 끝으로 수직절벽을 드러낸 암봉이 탁필봉이다.

보살봉~의상봉~두들마~청량사

정상 쇠사다리를 되내려와 조금만 가면 곧 탁필봉이다. 높이 40m쯤 될까. 상상하기에 따라서는 먹을 듬뿍 묻혀 세워 둔 거대한 붓처럼 보일 것도 같다. 탁필봉 바로 다음의 연적봉은 사방으로 조망이 트였고, 나무그늘도 보살봉보다 다소 짙어서 쉬며 경치를 구경하기엔 더 낫다.

연적봉 정상 쇠사다리를 내려서면 뒤실고개. '119구조요청 표지판8' 이 세워져 있는 곳으로, 여기서 종주를 마치고 그만 청량사로 내려갈 수 있다. 하지만 의상봉 정상 조망이 너무 아쉽다.

뒤실고개에서 가파른 능선길을 따라 오르면 795m봉 꼭대기다. 이 봉을 넘자마자 앞에 깊은 안부가 보이고 그 뒤에 높은 절벽을 가진 암봉이 섰는데, 그것이 자란봉(821m)이다. 폭이 겨우 1m 남짓 되는, 굵은 동앗줄이 설치된 좁은 바위 협곡지대에 이어 계단길을 지나면 자란봉 직전 안부다. 여기서 앞을 보면 거대한 자란봉 암벽이 숲과 어울려 앞을 막고 있다.

여기서 왼쪽으로 100m쯤 내려가면 갈림길목이 나온다. 물론 오른쪽으로 가야 의상봉이다. 왼쪽은 계곡으로 하여 청량사 찻길 입구(작은 저수지의 육각정자)로 이어지는 길이다. 길목엔 '<-의상봉 0.6km, 40분.자소봉(보살봉)->1.3km, 1시간30분, 육각정자' 팻말이 세워져 있다.

삼거리 길목에서부터는 또한 만만찮은 경사의 돌길이 시작된다. 폭이 2~3m 바위 협곡에 이어 쇠사다리를 10분 남짓 오르면 앞이 트이는 능선 위다. 여기에 다다르면 왼쪽 능선으로 난 길이 제길 같지만, 절벽으로 막힌다. 능선 너머 바로 앞으로 널찍한 내리막길이 있는데, 이 길을 따라 내려가야 한다. 잠깐만 내려가면 안내판이 선 안부다.

안부에서부터 정상까지도 또한 급경사 길. 정상은 평평한 평지를 이루었으며, 등산로 안내판과 '의상봉 870.4m'라 새겨진 표지석도 서 있다. 그러나 주변은 숲에 가려 조망이 별로이므로 정상 지나 곧장 100m쯤 더 내려가본다. 거기에 기막힌 조망터가 있다. 청량산 남서쪽 일대의 기암들과 가파른 산록, 그리고 푸른 낙동강 물줄기가 조망된다. 저 멀리까지 막힘이 없어서 가슴이 시원스레 씻기는 곳이다. 여기서는 이 산이 그저 저 앞 산들보다 더 높기만한 것이 아니라 하늘에 따로이 떠올라 있는 것 같은 느낌이다. 주세붕이 여기마저 올라보았다면 <유청량산록>은 한결 더 길어졌을 것이다.

조망대 절벽 경계로는 쇠울이 설치돼 있고, 왼쪽 옆엔 큼직한 소나무가 서서 그늘을 드리우고 있으며, 가파른 절벽 위 이니 솔바람이 끊이질 않는다. 맑을 청자에 서늘할 량자를 쓴 청량산이란 이름이 기막히게 어울리는 산임을 실감할 수 있는 자리다.

이곳 의상봉 조망대 구경마저 마친 뒤 하산은, 발걸음을 한참 되돌려 자란봉 남쪽 안부의 갈림길목까지 가서 육각정 서쪽 계곡길을 택하는 것이 그간의 상례였다. 그러나 두어 해 전부터는 조망터에서 곧장 내리닫는 계곡길이 애용된다.

조망대 옆의 그늘 좋은 소나무에서 동쪽으로 족적이 나 있는데, 이 길을 따르면 된다. 처음에는 경사가 상당히 가팔라서 주의해야 한다. 그러나 급경사 구간은 그리 길지 않으며, 곧 남쪽 조망이 괜찮게 열리는 계곡을 따르게 된다.

조망터에서 20분쯤 내려가면 아까 정상 조망대에서 녹슨 양철지붕들만 빤히 내려다보였던 두들마 마을에 닿는다. 두들마 마을에서 그 아래 청량골 포장도로까지는 콘크리트 포장도로가 구불거리며 이어진다.

두들마 마을로 내려가기 직전, 왼쪽으로 가로지르는 길이 나 있는데, 만약 팔각정자로 하산하거나 청량사로 가려면 이 길을 택하도록 한다. 아르드리 소나무가 선 지점으로 능선 허리를 지나 내려가면 가뭄에도 좀체 말라붙지 않는 계류가 흐르는 지점으로 내려선다. 이곳은 자란봉 직전 안부에서 시작되는 갈림길이 와 닿는 곳이기도 하다.

이곳에서 4부 능선을 따르는 가로지름길이 계속 이어진다. 능선을 두어 개 더 넘어 가노라면 지금까지보다 한결 큰 계곡이 나서는데, 바로 청량사 찻길이 난 계곡이다. 이 큼직한 계곡으로 돌아들기 직전, 오른쪽의 능선을 따라 내리막길이 갈라져 나가는데, 이것이 육각정자로 가는 길이다.

육각정자 길로 내려가지 않고, 가로지름길을 따르면 곧 청량사 전 약 200m 지점의 찻길로 연결된다. 이렇게 청량사까지 와서 출발점인 입석으로 되돌아가는 거리까지 감안하면 약 9km에 소요시간은 느긋한 탐승 산행으로 할 경우 5~6시간 잡으면 된다. 차량이 2대여서 두들마 아래 주차장에 한 대를 미리 가져다두고 두들마로 곧장 하산한다면 1시간 이상 단축할 수 있다.

그러나 그렇게 하여 시간을 줄인들 무슨 큰 의미가 있겠는가. 아침에도 보고 저녁에도 둘러볼 만한 것이 청량사에서의 사방 풍경이다. 비가 좀 온다고 하여 청량산행을 취소하지도 말 일이다. 이 지역 산꾼들은 오히려 비가 올 때 청량산을 찾는다. 여지없이 산 허리로 이내가 둘러지며 선경을 이루기 때문이다.

자란봉 전 안부~육각정자 길은 돌길인 데다 정비가 잘 안 돼 있다. 의상봉 조망대에서 두들마로 가는 길이 나기 전에는 이 길을 하산로로 잡았다. 그러나 이제는 별 쓸모가 없는 길이 된 것 같다. 하산을 시작한 지 20분만에 두들마~청량사 간의 4부 능선 가로지름길을 만난다. 비가 내리면 물이 흐르는 물길을 따라 내려가다가 급작스레 왼쪽으로 꺾이며 길이 이어지는데, 그냥 훅 지나치지 않도록 유의한다. 이번 취재 산행 때는 하산하다가 처음 물을 만난 곳으로서, 가문 가을에는 물이 말라 붙을 것으로 보인다.

청량사~보살봉~뒤실고개~청량사

청량사에서 보살봉으로 오르는 길은 암봉 능선으로 걸쳐지는 계곡길 중 가장 왕래가 잦다. 청량산 2대 핵심이라 한다면 청량사와 내청량의 주봉인 보살봉이다. 이 두 명소를 최단거리로 꿰는 탐승로이기 때문이다. 이 길로 보살봉까지 직접 오른 다음 의상봉으로 하여 앞에 설명한 코스로 하산하는 것도 괜찮은 산행이 될 것 같다.

오름길목은 청량사 동쪽 옆의 오산당이다. 오산당 옆에 거대한 고사목 줄기와 안내판이 서 있으며, 거기서 널찍한 오름길이 시작된다. 10분쯤 오르면 오른쪽으로 김생굴 가는 갈림길목이 있다. 그대로 직진, 골짜기 안으로 접어들면 작은 구름다리를 지나며, 그 직후 절벽 위의 조망처가 나타난다. 청량사와 연화봉이 특히 두드러져 보이는 곳이다.

조망대 지나 10분쯤, 역시 가파른 길을 오르면 작은 지능선 위에 다다른다. '청량사 0.6km, 김생굴 0.6km, 응진전 1.1km' 라 쓰인 팻말이 서 있다. 이후는 능선이지만 여전히 가파른 경사로 길이 이어지며, 20여 분 뒤에 보살봉 아래 닿는다.

청량사에서 보살봉까지는 1km 남짓한 거리지만 워낙 가팔라서 건각의 남자라도 50분쯤 걸린다. 이후 가장 짧게 한 바퀴 돌아 내려오는 코스를 잡는다면 뒤실고개~청량사 코스다. 이렇게 잡으면 총 산행시간이 2~3시간에 불과한 미니 코스가 될 것이다.

보살봉에서 뒤실고개에 이르기 전의 능선에서 왼쪽 계곡으로 빠지는 길들은 모두 폐쇄되었다. 보살봉 정상, 연적봉 정상을 모두 구경하고 간다해도 뒤실고개까지는 40분으로 족하다. 뒤실고개는 8번 119구조 팻말이 있으므로 이를 표지 삼아 찾아간다.

뒤실고개에서 청량사로 바로 내려가는 길은 계곡길로서, 길이 잘 정비돼 있다. 물론 다른 산에 비하면 가파른 길이지만, 그래도 청량산에서는 비교적 완경사라 할 수 있는 길이다. 고개를 내려선 지 20여 분만에 청량사 유리보전 옆으로 내려서게 된다.

*교통

수도권에서는 일단 봉화까지 가는 것이 순서다. 서울 청량리역에서 봉화행 열차 08:25(새), 23:30(무) 출발.

구의동 동서울시외버스터미널(02-446-8000)에서 봉화행 일반직통 버스가 1일 7회(08:02, 09:14, 5:30, 09:55, 10:52, 12:34, 13:18) 출발. 5시간30분 소요. 요금 15,300원.

봉화시외버스정류장(054-673-4400)에서 청량산행 버스 1일 4회(06:20, 09:20, 13:30, 17:40) 출발. 관리사무소 앞 에서 정차. 40분 소요.

안동시외버스정류장에서 청량산행 버스 1일 6회(05:50, 08:50, 10:00, 11:50, 14:50, 17:50) 출발. 1시간 소요.

자가용 차량으로 갈 경우는 원주~단양~영주~봉화~청량산의 순서로 찾아간다.

청량산 도립공원 관리사무소 전화 054-672-4994.

*숙박

창량산 주변에 민박집이 여러 가구 있다. 그중 청량골 상류부 입석 위쪽에 있는 청량상휴게소가 가장 규모가 크다. 앞의 공터가 널찍하고 공터 모서리 그늘지대에 평상을 두어 쉬기에 좋다. 가게를 겸하고 있다(전화 054-672-1447).

두들마 입구엔 산성식당민박(054-672-1133)이 있다. 주차장도 갖췄다.

광석리 강변캠프지 뒤의 대형 주차장 옆에 민박집이 2가구 있다. 이영한씨 집 054-672-1478, 조상래씨 집 672- 1517.

관리사무소 북서쪽 모서리 뒷실 마을의 청원마을민박집(673-4628)은 음식점을 겸한 집으로서 깨끗하고 친절하다.

*청량산지도보기

*오산당~보살봉~뒤실고개~청량사~김생굴~응진전~입석 코스

*청량사 입구 삼거리~입석~응진전~어풍대~김생굴~자소봉~탁필봉~뒤실고개~자란봉~정상~두들마~폭포슈퍼민박

참고: 월간<산> 2001년 9월호
Copyright ©2001 JOONG-YOUNG,PARK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166 &lt;로컬 푸드&gt; : 허 남혁등 번역(한겨레신문) 권현주 2006.10.27 2317
165 고등교육법 개정법률안에 대한 대학의견 수렴 결과 요약 홍길동 2006.10.23 2427
164 3인 가구 최저생계비에 못 미쳐/내일신문 장세풍기자 2006.10.23 3546
163 시간강사 강의료, 전임강사의 25% 그쳐 이수범 기자 2006.10.20 2145
162 교수7개단체 연대 한교조 2006.10.17 2399
161 조합원동지 여러분께 한교조 2006.10.17 2466
160 콩나물교실에 무슨 경쟁력이 있을까? 한국일보 2006.10.02 2038
159 1인시위 동참을 요청합니다. 경북대분회(펌) 2006.10.01 2259
158 대학강사문제 놔두고 대학개혁 없다 교수신문 2006.10.01 2094
157 만장일치의 인문학 위기보다 기존질서에 맞선 항명쪽으로 교수신문 2006.10.01 2063
156 강사문제 외면하는 인문학 위기 위선이다. 교수신문 2006.10.01 1989
155 “전태일 열사도 울고 갈 시간강사 처우” 매일노동뉴스 2006.09.07 2468
154 법률안 상정 의결 요구“비정규직 교수의 교원 지위 인정해야” /교수신문 박수진기자 2006.09.05 2102
153 “시간강사, 70년대 노동자보다 나을 것 없다” 김선주기자 2006.09.05 2324
152 시간강사, 교원지위 확보 법개정 나섰다 프로메테우스 2006.08.30 2166
151 대학개혁 및 교원법적지위 쟁취 특별위원회 출범 한교조 2006.08.24 2208
150 이상향을 찾아서 [문화일보 2006-02-25 ] 권현주 2006.07.13 2305
149 [교원법적지위 쟁취 특위] 구성제안 한비조에서 2006.06.26 2121
» 청량산 이한방 2006.06.20 2344
147 6월 22일 청량산 외래교수 산행 案 이한방 2006.06.17 238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