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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사문제 외면하는 인문학 위기 위선이다.

2006.10.01 1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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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평_왜 다시 인문학 위기인가
비인문학적인 ‘인문학 선언’

2006년 09월 23일 (토) 01:02:40 허영수 기자 ysheo@kyosu.net



□ 조선일보는 ‘위기의 인문학 살 길은…’이라는 기획을 통해 인문학의 위기를 세 차례(9. 18~9.20)에 걸쳐 진단했고, 한국일보는 ‘老지성들에게 듣는다’라는 특집좌담(9.21)을 진행했다. 동아일보는 전국 인문·사회과학 교수 83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9.19)를 싣는가 하면, 세계일보는 기획 ‘뿌리째 흔들리는 인문학’(9.20)을 한 면에 걸쳐 다뤘고, 문화일보도 ‘인문학의 위기’를 네 차례 이상 기획으로 다뤘다. 가히 인문학 위기론의 범람이라 할 만하다.

인문학 위기 담론이 신문 지상을 가로지르고 있다. 고려대 문과대학 교수 전원이 지난 15일 ‘9·17 인문학 선언’을 한 이후, ‘인문학 위기’라는 주제는 호기를 만난 듯 주요 언론의 사설·칼럼·기획기사 등을 통해 다뤄지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인문학 위기의 내용이나 대안이 피상적이라는 점이다. 정부 지원이 부족해서 인문학이 위기에 직면했는지, 인문학의 위기가 시장주의 때문인지 등에 대한 문제 제기를 찾기 힘들다.


‘대학의 상업화’와 ‘인문학 위기’가 동일시되고, 대학의 상업화는 인문정신의 확대로 극복하고, 인문정신의 확대는 인문학자의 자기반성과 정부의 지원 확대로 가능하다는 식의 담론형태만이 자기복제를 되풀이중이다. 한국일보의 사설(9. 18)만이 “인문학자들이 비판하고 있는 신자유주의, 상업화, 시장논리 등은 분야를 막론하고 모두가 헤쳐나가야 할 도전이지 인문학만의 위기와 좌절요소는 아니다. 이런 점에서 선언문에 담긴 학계의 반성과 성찰은 충분하지 않다고 본다”라고 비판한 정도이다.


그러나 대학의 상업화를 인문학 위기와 연결짓는 것은 인문학의 자생성과 본질을 포기하는 발언에 가깝지 않을까. 마치 인문학자만이 피해자인 듯, 다른 기초학문을 대표하는 자리에 인문학을 올려놓는 행위도 마주하기 힘든 포즈다.


김상봉 전남대 교수(철학과)는 “위기를 선언만 할 게 아니라 위기 상황에 대한 새로운 시각이나 철저한 반성을 보여줘야 하는데, 위기의 내용이 너무 피상적이어서 지극히 비인문학적이었다”라며 일회적인 관심을 호소하는 인문학 선언을 비판적으로 바라봤다. 공허한 인문학 위기 담론이야말로 ‘인문학의 위기’를 액면 그대로 보여준다는 얘기였다. 불합리한 사회구조로 많은 이들이 고통 받고 있는 상황에서 의미 있는 발언이 이뤄져야 함에도, 마치 이벤트처럼 일을 진행한다는 것이다.


과연 이번 인문학 선언이 인문학의 본령인 철저한 묘사와 통찰을 보여주고 있는 지도 의문이다. 인문학자의 ‘사유의 庭園’이라 할 수 있는 대학이 프로젝트 중심의 학진형 인간들로 채워져가거나, 분과학문적인 이기주의로 얼룩져가고 있는 모습, 그 것의 한없는 비극성을 인문학의 언어와 형식으로 드러내는 구체성이 필요했다.


그러나 실제로는 어땠을까. ‘9·17 인문학 선언’은 “무차별적인 시장 논리와 효율성에 대한 맹신이 팽배한 우리 사회에서 인문학은 그 존립 근거와 토대마저 위협”받고 있다고 하면서, “사회 현실의 문제들을 입체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학제간 연구 방법론 개발에 소홀했으며, 새로운 사회적 요구와 수요가 반영되도록 인문학의 체질을 개선하는 데 소극적이었다”는 점을 자기반성의 내용으로 삼고 있다. 인문학적 대응이라고 하기엔 지극히 실망스러운 진단과 처방에 다름 아니었다. 대학의 상업화에 대한 비판적인 실천 행위는 굳이 인문학자로서가 아니라 교수의 자격으로 벌써 나서야 할 상황이었다.


배병삼 영산대 교수(정치학)는 “인문학이 더 철저히 버림받아야 한다는 주장이 오히려 진짜로 인문학을 아끼는 소리”라면서 서양화·전문화·과학화를 표방한 인문학이 벙어리가 돼 지금의 인문학이 한계에 직면한 것이라고 얘기했다. 인문학의 위기보다 인문학자의 위기를 말하고자 한 것.


일각에서는, 바로 옆에 있는 시간강사들의 어려움에 대해서는 침묵하다가 대학의 상업화를 말하면서 ‘인문학의 위기’를 선언하는 것은 위선적인 것이 아니냐는 시각도 없지 않았다. ‘9·17 인문학 선언’이 대외적으로 불러일으킨 파장과 여론 환기는 충분히 그 자체로 의미 있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제도권 내에 갇혀 있는 인문학자들의 앓는 소리라는 냉소적인 시각이다.


한 동양철학 전공 교수는 “시간강사 문제를 도외시한 채 뒤늦게 인문학 선언을 한다는 데에 비판적 입장을 가지고 있다”라면서 “시장논리가 지배하면 할수록 오히려 인문학에 대한 갈증과 관심이 커질 수 있는데, 그러지 못한 것은 인문학자들의 고민과 노력이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언급했다. 인문학 자체가 상상력과 직관의 요소가 강한 학문인데, 어떻게 타 학문 분야와 마찬가지로 똑같이 제도의 틀에서 문제를 사유하는가, 라는 비판도 함께 했다.


인문학의 위기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고, 인문학은 늘 위기였다. 인문학이 그 특성상 제도와 사회로부터의 인정과 상관없이, 오히려 자본주의와 기술과의 고유한 긴장으로부터 창의성이 생기는 학문이라는 점도 고려할 사항이다.


김영민 한일장신대 교수(철학)는 “자본주의, 기술에 대한 비판정신, 그것과의 싸움은 기본적인 것으로, 외부로부터의 인정이 아니라 비평정신 그 자체에 근본적인 쾌락이 있는 것이며, 인문학 자체가 당대와의 창의적인 不和의 소산이라고 본다”라면서, 외부에서 대안을 찾는 것에 대해 비판적 입장을 취했다.


연구비 지원이 많아진다고 해서, 학과의 정원을 줄이지 않는다고 해서, 인문학진흥원이 생긴다고 해서 인문학이 부흥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스스로 자신이 인문학자인지에 대한 심각한 성찰이 요구되는 시점. 김영민 교수의 표현처럼 “비평 행위 그 자체의 쾌락”으로서 자신의 존재를 내보이거나, 아니면 은둔하는 블랑쇼처럼 “정신의 무한한 순환운동을 寓意的으로 표현하는 데 평생을 보내는 것”에 만족하는 기질을 보유하지 못한다면, 스스로 인문학자의 명함을 반납하는 것이 도리일 수 있다. 인문학의 위기가 밖에서 뿐 아니라 안에서 싹튼 면이 있다고 한다면, 위기를 벗어나는 길은 피상적인 우려에서 벗어나 고통스럽게 뼛속까지 내려가는 길 뿐이다.
허영수 기자 ysheo@kyosu.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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